엔비디아, ‘AI 거품론’ 잠재우며 역대급 실적… 독점 아성에 도전장 낸 ‘모듈러’
인공지능(AI) 붐을 주도하는 엔비디아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최근 불거진 ‘AI 거품론’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 대비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우려 속에서도 엔비디아는 다시 한번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화려한 실적 이면에는 소수 빅테크에 편중된 매출 구조와 전력 수급 문제라는 리스크가 여전하며, 엔비디아의 핵심 경쟁력인 소프트웨어 생태계 ‘쿠다(CUDA)’의 독점을 깨뜨리려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도전 또한 거세지고 있다.
멈추지 않는 ‘AI 칩’ 질주와 젠슨 황의 자신감
지난 19일(현지 시각) 엔비디아는 3분기(8~10월) 매출 570억 1000만 달러(약 83조 4000억 원), 주당 순이익(EPS) 1.3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월가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수치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2%, 순이익은 60%나 급증했다. 젠슨 황 CEO는 차세대 AI 칩인 ‘블랙웰’의 수요가 차트에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클라우드용 GPU는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며 “우리는 AI의 선순환 구조에 진입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는 글로벌 AI 산업의 풍향계로 여겨진다. 최근 피터 틸 등 유명 투자자들이 엔비디아 주식을 매도하고, 빅테크 기업들의 과도한 ‘빚투’ 우려가 제기되면서 AI 거품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번 실적은 AI 인프라 구축 수요가 여전히 폭발적임을 숫자로 증명하며 시장의 불안을 잠재웠다. 이에 힘입어 엔비디아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급등했고, 국내 증시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주가 일제히 오르며 코스피 지수가 4000선에 복귀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화려한 실적 뒤에 숨겨진 리스크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엔비디아 매출의 성장률 둔화와 특정 고객사에 대한 의존도 심화는 잠재적 불안 요소로 지적된다. 공시에 따르면 3분기 매출의 61%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상위 4개 고객사에서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오라클 등이 이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자본이나 전력 확보 문제로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경우 엔비디아의 실적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소수의 칩 제조사와 클라우드 업체 간의 순환적인 거래 구조가 인위적인 매출을 형성할 수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엔비디아 역시 규제 공시를 통해 고객사의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자본 및 에너지 조달 능력이 성장의 제약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젠슨 황 CEO는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고 언급했지만, 대규모 투자 회수 시점과 경기 둔화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투자자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쿠다’ 장벽에 균열을 내라: 스타트업 ‘모듈러’의 등장
엔비디아가 하드웨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히 칩 성능 때문만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구축해 온 소프트웨어 생태계인 ‘쿠다(CUDA)’가 사실상 AI 업계의 운영체제(OS) 역할을 하며 강력한 진입 장벽, 즉 ‘해자(Moat)’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은 쿠다에 익숙해져 있어 다른 칩으로 갈아타기가 매우 어렵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축복이지만, 개발자와 경쟁사 입장에서는 심각한 제약이다.
이런 가운데 실리콘밸리에서는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독점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그 선봉에 선 곳이 바로 스타트업 ‘모듈러(Modular)’다. 애플의 프로그래밍 언어인 ‘스위프트(Swift)’를 만든 크리스 라트너와 구글의 TPU 소프트웨어를 구축한 팀 데이비스가 공동 창업한 이 회사는 쿠다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칩 종류 상관없는 ‘AI 호환성’이 무기
모듈러의 핵심 무기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인 ‘모조(Mojo)’와 AI 추론 엔진인 ‘맥스(MAX)’다. 현재 AI 산업은 엔비디아 GPU, 구글 TPU, AMD 칩 등이 각기 다른 소프트웨어 스택을 요구해 개발자들이 매번 바퀴를 다시 발명해야 하는 비효율을 겪고 있다. 크리스 라트너 CEO는 “누구도 호환성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며, 엔비디아는 자신들의 칩 판매를 위해 폐쇄적인 생태계를 유지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모듈러는 개발자들이 파이썬처럼 쉽게 코딩하면서도 C++ 수준의 성능을 낼 수 있는 ‘모조’를 통해 어떤 칩에서도 AI 모델을 효율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려 한다. 실제로 모듈러는 최근 엔비디아의 최신 칩과 AMD의 GPU를 동일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구동했을 때, AMD 칩의 성능을 자체 소프트웨어 대비 50%나 끌어올렸다고 발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구글 딥마인드 출신의 카일란 깁스 인월드AI CEO는 모듈러의 시도에 대해 “미친 짓처럼 보일 수 있지만, 크리스 라트너는 그것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능력과 배짱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모듈러는 이미 구글 벤처스(GV) 등으로부터 3억 8000만 달러를 투자받으며 기업 가치 16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엔비디아가 막대한 실적을 앞세워 하드웨어 패권을 공고히 하는 사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독점의 사슬을 끊으려는 기술적 시도가 AI 산업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