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덮친 ‘저렴한 물가 상승’…달걀·라면·닭고기 가격 급등

경기 침체기에 서민 식탁을 지켜주던 대표적인 저가 식품, 달걀과 라면, 닭고기 가격이 한국에서 급등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저렴한’(cheap)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결합한 ‘치플레이션(cheapflation)’으로 불리며, 원가 상승이나 공급망 차질이 비교적 적더라도 저가 품목에서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최근의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다.

특히 달걀은 치플레이션의 대표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소고기 대체재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수요 증가와 공급 확대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동시에 오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6월 평균 일일 달걀 생산량은 4,864만 개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생산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산지 가격은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대란 10개 한 판의 산지 가격은 1,850원에서 1,950원으로 예상되며, 이는 지난해 1,646원 대비 12.4~18.5% 상승한 수치다. 이는 생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오르는 드문 사례다.

5월에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달걀 30개 들이 소비자 가격은 7,026원을 기록하며 2021년 7월(7,477원) 이후 약 4년 만에 7,000원을 돌파했다. 산란 가능한 생후 6개월 이상의 암탉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3% 증가해 5,704만 마리에 달했지만, 가격은 여전히 상승세를 보였다. 3~4월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이 영향을 미쳤으나, 전체 공급량은 크게 줄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고기류 가격 부담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주요 단백질 섭취원을 달걀로 대체하면서 수요가 급증한 것이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올 13월 대형마트 및 편의점에서 판매된 달걀은 11억 2,200만 개로,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 4월에도 전년 대비 0.8% 추가 상승했다. 반면, 유통업체들의 재고 보유 기간은 기존 34일에서 1~2일 수준으로 감소한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인 달걀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면 역시 경기 침체 시 수요가 늘어나는 대표적인 식품이지만, 이 또한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수요 증가에 따라 제조사들이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6.2% 올라, 2023년 9월 이후 2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치플레이션의 영향은 특히 저가 라면 제품에서 두드러진다. 한국소비자원이 2023년 5월과 2024년 5월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진라면 순한맛(5개입)은 3,769원에서 4,204원으로 435원 상승해 가장 큰 폭의 인상을 기록했다. 반면, 이미 고가였던 베지터스티 누들수프(5개입)는 5,122원에서 5,234원으로 112원만 오르는 데 그쳤다.

달걀과 라면처럼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필수 식품들은 가격이 오르더라도 쉽게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최근엔 닭고기 가격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 한국에 닭고기를 수출하는 주요 국가인 브라질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서 수입이 일시 중단되었다. 브라질산 제품은 통상 한 달 이상이 소요돼 국내 공급 차질은 6월 말쯤 발생할 전망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산업체들은 미리 가격을 인상했다. 그 결과, 5월 육계 도매가는 전년 대비 16.4% 상승한 3,959원을 기록했다.

중앙대학교 이정희 경제학과 교수는 “서민들이 주로 소비하는 기초 식품 가격이 조용히 오르고 있다”며 “정부는 원자재 및 유통 비용 구조를 면밀히 분석해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