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공룡, 미중 무역 갈등 속 홍콩 증시 데뷔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인 중국의 CATL(컨템퍼러리 암페렉스 테크놀로지)이 홍콩 증시에서 첫 거래를 시작하며 주가가 급등했지만, 미국 본토 투자자들은 이 주식 매수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이는 갈수록 심화되는 미중 간 금융 ‘디커플링’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CATL은 중국 내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술 기업 중 하나로 꼽히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번 홍콩 상장은 CATL이 본토인 선전에 이어 처음으로 중국 외부에서 진행한 주식 공개(IPO)로, 시장조사업체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올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상장으로 기록됐다. 첫날 주가는 16%나 상승했다.
하지만 미국 본토 투자자들은 이 상장에 참여할 수 없었다. 미중 간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CATL은 미국 내 안보 및 규제 압박을 고려해 미국 본토 투자자들을 상장 대상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과거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2014년 중국 전자상거래 대기업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을 당시에는 투자자들의 환호 속에 218억 달러를 유치하며, 월가와 일반 투자자 모두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었다.
이번 CATL 상장에서 미국 투자자들이 제외된 것은 미중 간 금융 갈등이 본격적으로 분리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워싱턴과 베이징은 서로를 겨냥해 제재와 블랙리스트 지정, 관세 부과 등을 주고받으며 갈등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 국방부는 CATL을 중국 군사기업으로 지정했으며, 일부 미국 의원들은 월가의 투자은행들에 홍콩 상장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CATL은 이미 미국으로부터 관세 부과 조치도 받은 상태다.
홍콩에서 진행된 이번 CATL 상장은 과거와 비교해 글로벌 투자 지형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지사장을 지낸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는 “우리는 중국과의 금융 완전 분리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미국 의회가 이러한 단절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서 거래되는 중국 기업의 주식이 다음 제재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 문제를 이유로 중국 기업의 미국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시작됐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 투자자들의 자금을 군사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러한 관세는 글로벌 시장에 충격을 주며 일부만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CATL의 홍콩 상장은 단순한 기업 행보가 아니라, 세계 두 경제 대국 간 갈등이 기업 활동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